감성과의 공명

'사랑을 말하다'에 해당되는 글 3건

  1. 사랑을 말하다 - 2008년 1월 3일 2009/07/22
  2. 사랑을 말하다 - 2008년 1월 2일 2009/07/22
  3. 사랑을 말하다 - 2008년 1월 1일 2009/07/21



그녀는 가난한 유학생이었다.
아니, 유학생이 되면 모두 가난해진다.

파리의 외곽 아파트를 빌어 살고 있었지만,
저녁에 강의를 마치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기 때문에
밤이 다 되어서 연습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피아노는 중고였지만, 레몬 향이 난다고 할까?
그런 샛 노랗고 동당 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중요한 오디션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 연습을 했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이웃의 불만이었다.
아래층 사는 할머니는 귀가 어둡기 때문에
그녀의 피아노 소리에 별로 방해받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방은 다행히 사이드 쪽이여서
왼쪽에는 허공이 있고 오른쪽엔 젊은 커플이 살았다.

젊은 커플은 새벽에 들어올 때가 많았고
밤새 파티를 하거나 커다랗게 음악을 틀어 놓곤 했으니까
피장 파장 그녀에게 항의 같은 것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위층에 사는 사람이 문제였다.
그 사람 예민해 보였다.

마른 남자였고 키가 컸다.
항상 모자를 쓰고 다녀서 얼굴 보다는 모자에 시선이 갔었다.

어쩌면 불면증이 있거나 원형 탈모가 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신경이 예민한 남자 일거다.

하루는 꼬박 밤을 새면서 연습을 했다.
다음날, 그녀는 볼까지 내려온 다크 써클을 달고 현관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거기에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그 꽃다발은 옆집 장미를 몇개 꺽어 만든 것이였다.
그녀는 장미 품종을 잘 알고 있어서 한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옆집 사람 알면 큰일 나겠는걸...'

꽃다발 안에 있는 쪽지를 펼쳤다. 거기엔 이렇게 써 있었다.

" 어젯밤 당신의 콘서트는 정말 훌륭 했습니다. -윗층에서 "

- 사랑을 말하다


 



2009/07/22 22:15 2009/07/22 22:15

그리움이 차 올라서 꾸역 꾸역 무언가를 계속 먹어야만 했다.
마침 입 안에 혓바늘이 돋은터라, 그녀는 밥 같은 걸 잘 삼킬 수 없었다.

그래서 대신 물을 많이 마셨다.
커다란 생수통을 붙잡고 벌컥 벌컥 마시면,
모질게 질긴 그리움이 조금은 내려가는 것 같았다.

혓바늘, 그녀는 떠 올린다.

그녀가 혓바늘이 돋았다고 했을 때,
그가 약국을 들러 그녀의 집 앞으로 헉헉 거리며 뛰어 왔었다.

그리고 감기가 걸렸다고 말했을 때,
그는 한봉지의 약과 올망졸망한 귤이 가득 담긴 검은 비닐 봉투를 들고 한밤중에 홍길동처럼 나타났었다.

그는 대학에 막 들어간 신입생만 가질 수 있는 그녀의 감기와 외로움을 치료해주었다.
그렇게 좋은 추억들이 펄떡이며 살아 있는데, 어떻게 그리움을 죽일 수 있을까.

어느 시점부터는 참혹했던 기억이 좋은 추억들을 능가했다.
누가 먼저 사랑하게 됐는지, 기억 하지 못하듯.

누가 먼저 미워 하게 됐는지, 기억 할 수도 없었다.

처음엔 바위틈에서 흘러나온 작은 시냇물이었는데,
그 작은 물줄기들이 모이자 결국은 큰 강이 되어버렸다.

그들 사이엔 엄청난 양의 미움이 흘러 넘쳤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주고 받은 후엔 항상 미안하다고 그녀가 먼저 말했었다.

먼저 사과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전화벨에 온 신경이 메달려 있는 순간들을 더 이상 견딜수 없었다.

그녀는 그런 순간이 오면 이런 생각을 했다.

"그 없이도 내가 살아 갈 수 있을까? 아니 자신이 없어 한 순간도...
 왜 난 여기까지 온거지? 절대로 사랑 같은거 다신 하지 않겠다고 다짐 했었는데... "

그와 헤어진 후 그녀는 혼자 운전할때가 많아졌다.
차창을 열고 머릿결을 찬 바람에 휘날리며 달리는 동안에는 그럭저럭 견딜만한 기분이 되었다.

그런데 라디오에서 그가 좋아 하는 80년대 팝송이 흘러 나오자, 무심결에 따라 부르고 말았다.
그러다가 흥에 겨워, 자신도 모르게 핸들을 툭툭 치며 장단까지 맞췄다.

그녀는 그때 문득 생각했다.

사랑이 갔다, 한 시절이 갔다.

-사랑을 말하다
   

2009/07/22 00:05 2009/07/22 00:05


그녀가 손톱 끝에 갈라져나온 잔 가시처럼 거슬린다.

이를테면,

그녀가 미용실에 다녀와 "나 달라진거 모르겠어?" 하고 뻔한 질문을 던지는게 싫다.
또 그녀가 잡지에 소개된 이태리 음식점에 꼭 가야 한다면서
서울을 다 뒤짚어 놓을 듯이 날 끌고 다니는게 싫다.

그녀가 내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것도 싫다.
난 모른척 하고 있지만 그녀가 내 전화를 수시로 점검해 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무 싫다.

우리가 만난지 오래되서 그런걸까?
난 그녀를 안지 10년이 됐고 그중에서 사귄 시간은 7년 정도 된다.
열번의 봄과 겨울을 같이 보냈다는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난 그 사이에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었고, 군대도 다녀왔고, 직장인이 되었다

그녀 역시 외모부터 사고 방식까지 많은 것이 변해왔다.
7년전 우리가 처음 만났을때 과연 그때 모습이 지금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만일 우리 모두 원래의 모습에서 70% 정도 변했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사랑도 70% 정도 가까이 변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1월 1일 저녁이 내린다.

내가 좋아 하는 시간이다. 이것은 17년 전이나 7년 전이나 변화 없다.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눈가의 잔주름이 하나 둘 정도 생겼고, 콧등에 있는 작은 점은 그대로다
하지만, 난 세상을 몰라요 하는 얼굴 표정이, 이제는 아플만큼 아파 봤어요 하는 표정으로 변해있다.

그래, 그 순간에 내가 곁에 있었지
우리는 크고 작은 전쟁들을 같이 겪어 왔구나
그래서 소년과 소녀는 성인이 되었고
사랑은 너와 나의 전리품인거야

- 사랑을 말하다


 

2009/07/21 23:48 2009/07/21 23:48